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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인권/권익정보제공] 펭수와 보호자들의 당당함... 나는 부끄러워졌다.
20-02-14 11:03 86회 0건

"제가 하게뜸니다!"
 

백화점에서 내 손에 든 짐을 들어주려는 엄마에게 손을 닭날개처럼 짧게 붙이고 선서하듯 손바닥을 펴 보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재차 무거운 거는 나눠 들자며 내 양손에 든 짐을 가져가려 했다.

"괜찮뜸니다!"

또 배에 힘을 주고 말했다. 펭수가 재미없다는 엄마에게도 펭수의 매력을 전도한 탓에 엄마는 서른 넘은 딸내미가 뭘 흉내 내는지는 알고 계셨다. 꽉 움켜쥔 내 주먹을 펴면서까지 짐을 가져가려는 엄마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집중하다 보니 더 큰 목소리가 나왔다.

한껏 큰 목소리로 말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흘깃 보는 게 아니었다. 대놓고 눈이 휘둥그레져 아래위로 쳐다보거나 옆으로 지나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나에게 고정한 눈동자들. 익숙했다. 확장된 동공으로 스캔하며 내가 '비장애인'인지 파악해보려는 시선. 너무나 익숙했다. 자폐성 장애인과 함께 있을 때 공공장소에서 여러 번 받아본 눈길이다.

30대 성인이 '영구' 같은 말투로 두 마디 큰 소리를 낸 것에 대한 대가라기엔 시선들은 길고 차가웠다. 장애 여부를 판단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걸까. 나는 굳이 그걸 증명하고 싶지 않았다. 목소리를 조금 낮춰 계속 펭수 말투로 보따리를 움켜쥐며 엄마에게 말했다. 펭수가 그러하듯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엣헴 엣헴! 신이나~ 신이나~ 요를 레이 이이후!"

나는 꽤 오랜 시간 발달 장애인 활동보조 교사로 일했다. 주말에 발달 장애인의 부모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의 활동을 주로 했다. 지하철을 타는 법을 알려주고 함께 극장을 가는 등 사회 적응 활동을 시작으로 교외 연수원 등에서 하루, 이틀 밤을 함께 보내는 형식이었다. 장애인과 함께 다니는 것보다 더 에너지가 필요한 건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의 쏟아지는 눈동자에 의연한 대응을 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뚫어지게 우리를 보거나 추임새를 넣었다. '쯧쯧.'
 
당시 20대였던 나는 자폐 아동뿐 아니라 30, 40세의 발달 장애인과 함께 다닐 때도 있었다. 나보다 몸집도 크고 흰 머리도 듬성듬성 난 그들은 나에게 큰 목소리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꼭 손을 잡고 다녔다. 자폐성 장애인은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세상 모든 것에 마음을 열고 다가갔고 경계라는 걸 몰랐다. 우주와 같은 내면의 경계도,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동의 경계도 없었다. 그래서 세상 그 누구도, 무엇도 경계하지 않았다. 반면 이들을 공공장소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행여나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올까 차가운 시선과 표정으로 두꺼운 벽을 쳤다.

지나치게 큰 목소리에 산만하게 움직이는 팔, 다리와 얼굴. 때로는 자해하며 소리를 지르는 이들에게 시선이 가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장애인이 큰 목소리를 냈을 때와는 분명히 다른 시선이 쏟아진다. 뚫어지게 응시하는 것은 기본이고 "에휴 불쌍해서 어쩌나"라며 노골적으로 '나는, 내 자녀는 저렇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제 자리를 맴도는 자폐성 장애인을 꼭 끌어안고 진정시킬 때면, "저러면서까지 밖에 나와야겠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펭수와 자폐성 장애인은 정말 꼭 닮아 있다
 
펭수와 펭수의 보호자들은 늘 당당하다

펭수와 펭수의 보호자들은 늘 당당하다 ⓒ 자이언트펭TV

 
그러다 최근 유행하는 펭수의 중독성 있는 말투를 따라 하다 보니, 발달 장애인과 함께 있을 때 받았던 시선을 그대로 받게 됐다. 펭수에 푹 빠진 게 벌써 몇 달째인데 공공장소에서 펭수가 되어 본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 구독자 1명일 때부터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온 펭수와 제작진의 노고 그리고 발달 장애인의 지난 날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펭수의 말투와 행동은 자폐성 장애인과 닮아 있다. '자폐'라는 단어는 보통 부정적으로 쓰임을 알고 있다. 우리 사회는 혼밥을 즐기는 사람에게 '사회적 자폐'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단체생활을 즐기지 않는 이에게 '자폐아처럼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지 말라'는 충고를 서슴없이 해 왔다. 자폐는 그저 타고난 특성일 뿐이다. 펭수가 자폐성 장애인을 포함한 발달 장애인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활자로 바꾼 이 글이 펭수에 대한 모욕이 아님을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자폐성 장애인은 나와 시선 맞추기를 어려워했고 일상적으로 맥락 없는 소리를 냈다. 내 입장에서는 한 번이라도 내 눈과 맞춰주길 바랐지만 그들의 시선은 나의 어깨 너머와 먼 산을 향해 있었다. 사람마다 증상과 정도가 천차만별이라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대부분의 자폐성 장애인은 초단위로 입력되는 감각이 비장애인보다 몇 백 배 이상 많다고 한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폭탄 터지는 소리처럼 들릴 때도, 아파트 밖으로 지나가는 차의 바퀴가 굴러가며 땅에 만드는 진동이 지진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가 자연 재해를 입거나 전쟁 중일 때처럼 감당할 수 없는 자극이 평상시에도 이들에게 계속된다. 자폐성 장애인이 눈 앞의 나를 인식하고 내 말을 듣는 것만으로 작은 기적이었던 거다.
 
펭수의 눈은 시선이 없다. 늘 본인의 우주를 응시하고 있다. 또한 펭수는 음악적 영감을 받을 때면 장소 등 주변 환경은 고려하지 않고 뜬금없이 멜로디를 만들어내거나 추임새로 음악을 만든다. 때로는 맥락 없이 "꽤애애애~~액!" 목이 갈라져라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열 살 펭귄 펭수가 펭귄어를 하는 거다. 남극에서 헤엄쳐오다 스위스에 들러 배운 요들송을 언제 어디서든 자신 있게 큰 소리로 부른다. 뒤집어지는 목소리로 공공장소에도 크고 당당하게 부른다.
 
팬들은 초점 없는 펭수의 사백안을 사랑한다. 얼굴 근육이 없는 듯한 펭수지만 상황과 분위기 그리고 펭수의 말소리와 함께 표정을 느낄 수 있다. 펭수가 '엣헴'이라는 감탄사로 만든 10초짜리 음악을 1시간 동안 무한 반복하는 영상을 팬들이 직접 만들어 보고 또 본다. 팬들은 펭수가 하는 행동을 판단하거나 해석하지 않고 그저 사랑하는 거다. 펭수는 열 살이니까. 발달 장애인의 외모가 할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그들은 늘 다섯 살 또는 세 살인 것처럼.

펭수는 남극에서 온 펭귄이라 참치캔 또는 새우탕면과 같은 해산물만 먹는다. 좋아하는 간식은 빠다코코넛 과자와 녹차. 같은 조류에 속하는 닭으로 만든 치킨 등의 음식은 거부한다. 자폐성 장애인들 역시 식성부터 의상까지 호오가 뚜렷한 경우가 많다. 매일 먹는 음식만 고집하거나, 매일 같은 옷을 입으려 하고 같은 방향으로 앉아야만 하는 경우 등이 있다. 펭수의 취향마저 꿰고 있는 이들은 펭수에게 참치캔, 빠다코코넛 과자 그리고 녹차만을 선물한다. 자폐성 장애인이 한 가지 음식만 먹으려 하면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음식을 먹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펭수에게 그랬듯 자폐성 장애인이 한 가지 음식만을 선호하는 성향마저도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귀엽다, 예쁘다 칭찬 한 번 해주지 못했던 게 떠올랐다.

펭수 제작진에게 배우는 자폐성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
 
펭수

펭수 ⓒ 자이언트펭TV

 
펭수와 자폐성 장애인은 꼭 닮았으나 180도 다른 면도 있다. 바로 보호자의 태도다. 장애인들의 부모님들은 이유 없이 세상에 죄송해 했다. 활동 보조인인 나도 그랬다. 집 밖으로 한 걸음 떼는 일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 나가는 것처럼 힘든 이들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 우선이었는데, 사람들의 잘못된 반응에 오히려 허리를 숙였다. 

반면 펭수의 보호자들은 당당하다. 펭수는 소속사 EBS의 사장 이름을 "김명중!" 하고 크게 외치고, 인파들 사이로 거침없이 뛰어 가며 자신의 몸집에 맞지 않는 가위 등의 소품을 쥐어주는 이들에게 던지고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제작진은 그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외친다. "펭수는 열 살이라 아직 금전 개념이 없고 회사의 직급 체계를 몰라요", "펭수는 부모님을 남극에 두고 헤엄쳐서 한국까지 왔어요. 지금은 펭귄어를 하는 거예요"라고 귀띔해준다. 그렇게 뭇사람들은 펭수를 있는 그대로, 말 그대로 '펭수를 펭수로' 받아들인다.

펭수가 어떤 행동을 하든 미소 짓고 바라보게 된 건 순전히 제작진 덕이다. 혼자서는 의자에 앉거나 입구를 통과하는 것조차 못하는 펭수의 곁엔 늘 제작진이 함께한다. 제작진은 펭수를 이해해주고 감싸주며 펭수의 특성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당당한 양해를 구한다. 펭수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때를 제외하면, 펭수의 모든 행동을 칭찬하고 꼭 껴안아준다. 행여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꼭 존댓말을 사용해서 왜 그러면 안 되는지 잘 설명해준다. 키 2m가 넘는 거대 펭귄이지만 열 살이기 때문이다. 펭수 제작진은 백점 만점에 천 점짜리 발달 장애인 활동 보조자의 모습이다.
 
펭수를 기획한 EBS 이슬예나 PD는 펭수의 정체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여러 번 "펭수는 펭수"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자이언트 펭TV' 제작진은 펭수가 성별이 없다고도 했다. 펭수 인형탈 속에 어떤 사람이 들었든 상관없이 펭수는 그저 펭수일 뿐이었다. 우리 주변 자폐성 장애인을 대할 때도 펭수를 대하듯 해줬으면 한다. 특이한 소리를 내더라도 배제와 차별의 시선보다는 이해의 마음을 보내주길. 발달 장애인을 발달 장애인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길 바란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발달 장애인을 품고 돌보기는커녕 죄인 취급해 왔다. 불과 2년 전,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발달 장애인의 부모님은 눈물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2017년 기준 국내 등록된 발달 장애인 수는 2017년 12월 기준 22만 5601명이다. 이는 국내 총 인구의 0.4% 정도다. 또한 2017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미국 어린이 36명 중 1명이 자폐증이라고 발표했다. 발달 장애인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은데 주변이나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치기는 어렵다. 발달 장애인이 자립해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적절한 지원 정책이 부족한데다, 주변의 차가운 시선까지 겹쳐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펭수는 고향 남극에서 "너무 뚱뚱하고 크다고 다른 펭귄들이 놀아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지만 펭수는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은 외로웠다고 말한다. 대신 기후변화로 남극에 빙하가 녹아 힘든 펭귄들을 보호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왕따를 당해 걱정이라는 사람에게는 왕따를 조장하는 이들이 잘못된 거라며 책상이 부서질 듯 날개로 쾅쾅 치며 분노한다. 지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펭수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그리고 "특별하면 외로운이 별이 된다"고 노래한다.

하지만 특별한 별 중 아주 소수만이 사랑 받으며 빛난다는 걸 펭수는 알고 있다. 특별해서 외로운 별이 된 자폐성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펭수는 의사 표현도 또렷하고 말을 조리 있게 하는 반면 장애인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펭수와 자폐성 장애인의 행동 특성은 닿아 있는 부분이 많다. 우리는 펭수 제작진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너무도 특별해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세상으로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자폐성 장애인들에게 펭수에게 쏟는 사랑의 일부를 나눠 주는 게 어떨까.

-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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